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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고별

‘음악의 아버지’ 바흐, ‘천재’의 대명사 모차르트, 그리고 ‘음악의 성인’ 베토벤, ‘피아노의 시인’ 쇼팽… 삼척동자도 알만한 작곡가들이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 사람이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위대한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굵직한 업적을 이룬 대가에 반열에 올라있다. 그럼 요제프 하이든은 어떤가? 오늘날까지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소나타, 현악사중주와 같은 모양새를 확립한 장본인이 하이든이다. 음악사적으로 업적을 따져본다면 하이든만큼 저평가된 인물이 또 있을까. ‘천재’나 ‘악성’, ‘시인’에 비하면 그를 설명하는 마땅한 수식구가 없기도 하거니와 상대적으로 존재감도 떨어지고 마니아층도 부족하다. 그러나 여전히 하이든의 작품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이 빛난다. 70여 곡에 달하는 현악사중주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으니 엄청난 필력을 가진 작곡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3개의 현악사중주를 남긴 모차르트는 1785년 여섯 곡의 현악사중주를 ‘하이든 현악사중주’라는 이름을 붙여 출판했다. 모차르트의 여섯 곡의 ‘하이든 현악사중주’는 그를 대표하는 실내악 작품으로 평가된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은 하이든이었지만 몇 번의 고비와 위기를 지나면서 음악 애호가였던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인연은 음악가로서의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하이든은 30여 년 동안 생계 염려 없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악단을 직접 운영하면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작곡했다. 안정된 시스템을 가지게 된 하이든에게는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었다. 그만큼 다양한 음악적 상상력을 실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45번 교향곡에는 ‘고별’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이 작품만의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 악장이 후반부로 갈수록 단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다. 결국 현악기 주자 몇 명만 남기고 지휘자도 지휘봉을 내려놓고 무대 뒤로 향한다. 하이든은 누가, 언제 무대를 떠나야 하는지 순서를 정해 악보에 표시해 뒀다. 제일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를 지키며 음악을 마치는 연주자는 바이올린 두 명뿐이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미리 퇴장했던 모든 연주자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 비로소 연주가 마무리된다. 저명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마지막 두 명이 연주를 마치고 퇴장했는데도 빈 무대에 남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지휘봉을 휘저으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지휘자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흥미롭게 연출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이든은 고별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위트와 웃음으로 녹였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더 선명하다. 잠시 떠난 단원들은 곧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에 하이든의 고별은 진짜 고별이 아니다. 2014년 6월 첫 주말에 ‘한 걸음 더 가까이’라는 칼럼으로 시작해 6년 7개월 동안 이 지면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시간에 쫓겨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성급히 나눈 글을 보며 쥐구멍을 찾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종종 만나는 응원과 격려를 자양분 삼아 지금까지 161편의 칼럼을 쓰며 잠시나마 글쟁이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김동민의 클래식Talk는 이 문장으로 갈무리하지만, 곧 글이 아닌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12-18

[클래식TALK] 희망의 나무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호황이었다. 그 물결을 타고 주식 투자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사람들은 돈을 빌려 주식을 긁어모았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돈이 풀리지 않았고 기업들의 재무 상태도 심각해졌다. 늘어난 재고는 노동자들의 해고로 이어졌고, 이런 불길한 현상은 곧 주식 시장에 반영되었다. 1929년 10월에는 25%에 달하는 주가 폭락으로 미국 경제는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은행은 파산했고 인구의 1/4이 넘는 수는 실업자가 되었다. 세계 대공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차례로 건축되었다. 특히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를 지켰던 미국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뉴욕주의 투자로 세워졌는데, 대공황의 영향으로 반 토막이 된 자재 가격과 낮은 임금으로 건축을 시작한 지 단 1년 만인 1931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 겨울, 라커펠러 센터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6m 크기의 트리를 세웠다. 1933년부터 이 트리는 연례행사 화 되었고 1951년에는 방송을 통해 점등식 실황이 미전역으로 중계되었다. 올해의 트리는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65마일 떨어진 뉴욕 주의 작은 도시 플로리다에서 커팅되었다. 키 23m에 무게는 11톤에 달하는 노르웨이 단풍나무로 11월 14일에 뉴욕시로 옮겨왔다. 연말에 열리는 또 하나의 빅 이벤트인 타임스스퀘어의 새해맞이 행사 역시, 지난 2일의 트리 점등식처럼 비대면 행사로 진행된다. 10월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코로나 확진자 수는 최근 하루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연말 공연의 상징과도 같은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패밀리 콘서트인 ‘크리스마스 스펙타큘러(Christmas Spectacular)’를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그리고 뉴욕 시티 발레의 ‘호두까기 인형’ 역시 모두 취소되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공연예술의 부분적인 재개 가능성을 희망했지만, 또다시숨죽이며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국면이 되었다. 올 연말의 클래식 공연은 말 그대로 전멸이다. 2020년은 매년 12월 줄지어 이어지던 메시아 공연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는 유일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유일한 메이저 단체의 공연은 오는 17일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들로 구성된 현악사중주단과 저명한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가 함께 꾸미는 비대면 콘서트가 유일하다. 이날 공연에는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2번과드보르작 피아노 5중주가 연주된다. 뉴욕은 비대면 공연을 위한 리허설이나 영상 촬영을 진행할만한 장소와 환경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전문 공연장에서 비대면 공연을 계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연말의 특별함을 기대했던 사람들과 공연을 준비해오던 사람들 모두 이 모순적인 상황 앞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10년간의 대공황의 시기에도 희망을 나무를 세웠고, 역사적인 건축물을 올렸다. 지난 수요일 점등식을 가졌던 단풍나무는 뉴욕에서의 임무를 마치는 대로 마을을 세우고 집을 짓는 국제단체 ‘Habitat for Humanity’에 기부되어 또 다른 씨앗을 심는다. 그렇다.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은 가장 큰 성공이자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12-04

[클래식TALK] 버텨야 한다

최근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콘서트 트럭’ 시리즈를 시작했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에 의해 2016년 출발한 ‘콘서트 트럭’은 심포니 단원들과 연말까지 약 80여 회의 팝업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보다 앞서 뉴욕 필하모닉은 지난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뉴욕 필 밴드왜건(NY Phil Bandwagon)’이라는 거리 음악회를 총 80회 개최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날씨의 영향과 더불어 편성과 관객 동원의 한계에 부딪힐뿐더러, 실제 혜택을 얻는 사람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온라인 플랫폼이다. 아예 일찌감치 시즌 전체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던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산타페 오페라, 내슈빌 심포니 같은 단체도 있지만, 볼티모어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같은 곳은 비대면 시즌으로 재빨리 변경해 온라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역시 10월 초에 온라인으로 시즌 오프닝을 개최한 데 이어, 지난 주말 두 번째 비대면 공연을 연 바 있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이 첸(Ray Chen)은 온라인상의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유명 콩쿠르 입상으로 실력이 검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려한 외모에 젊고 감각 있는 SNS 포스팅으로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팬이 몰려든다. 티켓 파워까지 가진 레이 첸과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유명 단체 대부분은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용에 소극적이었다. 매출과 직결되는 관객층이 대부분 노년이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온라인 사용 빈도나 접근성이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 단체들은 단원들과의 계약과 노조와의 관계 때문에 영상을 사용하는 데 법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러다 보니 온라인 콘텐츠와 관련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유튜브 계정이 생긴 2009년 이후 현재까지 온라인 구독자 수가 1000명에 불과하다. 1970~80년대 이름을 날리던 하이틴 스타 송승환을 기억하는가. 배우로, 방송 진행자와 DJ로 활약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공연 기획자로 변신해 명성을 이어갔다. 화제작 ‘난타’를 제작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한국 작품을 탄생시켰다. 국내 최초로 전용 극장을 열었고, 문화 사업 분야로는 처음으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을 만큼 공연 예술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의 다양한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직을 맡게 되었을 당시에는 독배를 받아 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있었지만, ‘로이터’는 화려함과 생동감이라는 표현으로 평가했고, ‘가디언’은 남북 공동입장을 톱뉴스로 다뤘다. 피겨 스타 김연아의 깜짝 등장을 소개한 BBC는 아주 근사한 시도였다고 평가했을 만큼, 개폐회식에 대한 외신의 찬사를 끌어냈다. 본인의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플랫폼을 제작하며, 초대형 스케일의 국제행사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전천후 공연예술인은 과연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9년 만에 배우로서 연극무대에 선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선회를 통조림에 담아 팔 수는 없지 않겠냐며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공연들의 한계를 지적했다. 비대면 공연은 대면 공연을 절대로 대신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공연이라는 꽃은 현장에서 피어난다. 관객을 대면할 수 없는 공연은 그 특별함을 말할 수 없다. 현장이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연에서의 현장성은 절대적이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11-20

[클래식TALK] “Please wear your mask and wash your hands!”

지난 9월 말 세계 최대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인 ‘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가 문을 닫았다.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트르 폰 카라얀과 지휘자들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그리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 등과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음악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던 회사였다. 최근까지 클래식 음악의 스타 지휘자와 연주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던 곳이었기에 이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90년 역사를 자랑하던 거대 덩치의 CAMI는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폐업의 결정적 요인은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10월 13일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올 시즌 일정 관련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 3월 이후 모든 공연을 취소하면서 2021년 1월에는 연주를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7개월 만의 소식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3주 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올 시즌 전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뉴욕 필 17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CEO인 데보라보르다는 2021년 9월에 내년 시즌을 재개할 수 있다고 잠정 발표했다. 공연 중단은 금전적인 손실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무대에 직접 서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관련 종사자들의 생계 위협으로직결된다는 데 있다. 이는 결국 공연 예술 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뮤지컬 분야의 메카와도 같은 브로드웨이 극장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2018~19시즌 기준 18억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1천50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타임아웃 뉴욕’의 보도대로 올해는 이 숫자들이 모두 제로이다. 내년 6월까지 모든 공연 중단을 선언한 극장들과 배우, 연주자, 극장 관계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이미 사지에 몰려있다. 클래식이나 뮤지컬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페스티벌이나 순회연주, 발레 공연, 그리고 레코딩과 재즈 시장 역시 올스톱이다. 저변이 가장 넓다고 볼 수 있는 합창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미국 내 공연예술 관련자는 대략 1천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올 시즌 취소 관련 보도에서 보건 당국자의 말을 빌려, ‘백신이 개발되어 사람들에게 충분히 접종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트 착용이 불필요한 상황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과 전파이지만, 뉴욕타임스의 질문처럼, ‘과연 내년 9월에는 돌아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며칠 전 지인 여러 명의 페이스북에 유행처럼 돌던 포스팅이 있었다. 공연 관계자가 정리한 듯한 글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공연 예술계가 입고 있는 피해와 관련자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글의 결론은 예상외로 단순 명료했다. “Please wear your mask and wash your hands!” 한국이나 대만의 경우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면 공연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2주간의 격리를 감수하고라도 연주자들이 찾는 이유이다. 당국의 철저한 조치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시민들이 개인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발 마스크 착용과 손을 씻어주세요!”라는 호소에 감춰진 수많은 사람의 눈물 어린 절박함을 기억하자.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10-23

[클래식TALK] The show must go on

대학 입학 첫해 교양 영어 수업의 첫 챕터의 제목은 “The show must go on”이었다. 약속된 무대 때문에 부모의 죽음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그 글은 참으로 가혹했다. 4년간 전공 필수과목을 가르치셨던 한 교수님은 독일 유학 시절 예정된 음악회 때문에 부친의 장례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아버지의 임종 대신 관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진다. 지난 3월 이후 세상은 멈춰 선 듯하다. 많은 사람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일상은 급격하게 무너졌고, 관계도 단절되어갔다. 뉴욕을 빠져나가는 인구가 늘어나자 세계의 수도라는 도시는 점점 활기를 잃어 갔다. 그나마 집에서 일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함께 활동하던 젊은 음악가들은 연주가 없어져 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가족들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흘렀고 대중 시설들도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극장과 공연계는 아직 대기 순번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봄, 2021년 신년음악회를 기약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내년 9월 말에 공연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전격으로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표현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메트 오페라는 미국 내 공연 기관 중 최대 규모이다. 그렇기에 이번 결정이 다른 단체들에 미칠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주 정부 차원에서 공연장들의 제한 조치가 완화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결정들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대형 공장의 생산공정처럼 거대 단체들 역시 공연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충분하고 유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작품의 규모와 상관없이 무대 장치나 조명, 촬영, 의상, 메이크업, 리허설 등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개월째 멈춰있는 단체들이 고용된 모든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난감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체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텅 빈 객석에서 공연을 재개한다는 것은 갈증에 바닷물을 퍼마시는 것과 같다.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마중물은 남겨둬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필자가 이끄는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NYCP)는 지휘자와 솔리스트를 포함해서 약 20명 내외의 음악가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여는 작은 규모의 챔버 오케스트라이다. 규모나 연주 횟수는 메이저 단체들과 비교 대상이 안 되지만, 모두가 머뭇거리는 이 시점에 시즌 오프닝 공연을 지난 주말 과감히 열었다. 물론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열리는 음악회였다. 연주자들이 모여 리허설을 가진 후 음악회를 촬영, 편집하여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온라인에서 오픈했다. 대면 연주를 염두에 둬서 계획했던 기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위기의 짧은 작품들로 대체했고, 길이도 40분 정도로 일반 음악회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8대의 카메라를 사용해 여러 앵글을 구현했고, 입체적인 화면을 위해 전문 촬영 장비들을 사용했다. 공연장의 스태프들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장소를 오픈한 외부 단체라며 NYCP를 환영했다. 거리두기를 위한 공간 때문에 평소보다 적은 수의 연주자들이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무대에 섰다. 객석은 비어있었지만 6개월 만에 음악회를 연다는 사실만으로 긴장감이 다가왔다. 막혀있다고 생각되었던 현실 앞에서 우리는 “The show must go on”을 선택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변하는 상황 가운데 변화는 불가피하다. 어떻게 변화되기를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이 우리를 또 다른 출구로 안내할 것을 기대한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10-09

[클래식TALK] Big4의 가을

지난 3월 10일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했던 루이 랑그리(Louis Langree)와의 연주 직후 게르기에프가 이끄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12일부터 연주될 예정이었다. 이 시기는 뉴욕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위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뉴욕 필하모닉의 CEO인 데보라보르다(Deborah Borda)는 카네기홀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클라이브 길린슨(Clive Gillinson)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피터 겔브(Peter Gelb) 단장과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세 명의 단체장들은 더는 공연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남은 시즌을 전격 취소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뉴욕필은 예정되었던 유럽 투어를 취소했고, 악단 사무국 재택근무 체제로 돌렸다. 긴급 이사회가 개최되었고, 음악감독 얍 판 즈베덴과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필요한 대책들을 세워나갔다. 단원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탄생한 ‘NY Phil Plays On’를 통해 뉴욕 필하모닉의 무료 온라인 콘텐츠 시리즈가 런칭되었다. 시즌 취소 결정 직후, 10일 동안 벌어졌던 숨 가뿐 변화였다. 약 3개월이 지난 6월 1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비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 피터 겔브 단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9월 말 ‘아이다’로 시작될 2020~2021시즌의 가을 공연 전체를 취소하고, 12월 31일에 시즌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겔브 단장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대형 오페라 공연은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이 결정은 의료 전문가와 뉴욕 주정부의 방침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즌 첫 공연의 날짜를 연말로 특정했지만, 만일 이 시점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할 수준으로 상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피트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도, 무대 위의 합창단도, 그리고 스타 성악가들의 눈부신 향연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겔브 단장의 발표 열흘 후, 뉴욕 필하모닉도 2020~2021 시즌이 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려왔다. 메트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시즌 전반의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2021년 1월 6일에 공연을 재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소된 공연 중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뉴욕필 정기공연 데뷔 무대와 함께, 지휘자 김은선의 뉴욕필 데뷔, 작곡가 김택수의 ‘더부 산조’의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의 신문 매체인 데일리뉴스(Daily News)는 메트 오페라의 시즌 취소에 따른 예측 손실액이 6000만 달러(60 million)에 달할 것이라며, 지난 4월부터 연방정부의 실업 급여를 받게 된 극장의 정단원들과는 달리, 수많은 계약직 단원과 모든 무용수는 재정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반면 3월 10일 연주를 끝으로 활동이 중단된 뉴욕필의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공식 시즌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던 최근까지 단원들의 급여는 약간의 조정을 거쳐 모두 지급되었고, 의료보험은 오는 9월까지 변동 없이 보장될 것이라고 데보라보르다는WQXR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뉴욕필의 비올라 부수석 주자인 쏭 우(Cong Wu)에 의하면 지난 2016년에 체결되었던 단원들의 계약이 9월 20일에 종료된다. 이는 9월 21일부터 적용될 새로운 계약이 다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연주 없이 시간을 보낸 대형 악단의 단원 처우가 새로운 계약에 어떻게 반영될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을 상징하는 Big4, 카네기홀, 링컨센터, 뉴욕필, 메트 오페라와 같은 거대 단체들을 만날 수 없는 가을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던가. 최근 뉴욕필은 ‘NY Phil Bandwag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트럭을 개조해 필요한 음향장비와 조명을 싣고 맨해튼을 순회하며 콘서트를 여는 일종의 거리음악회이다. 단원들은 연말까지 문을 닫은 링컨센터가 아닌 뉴욕 중심가를 돌며 뉴요커들을 만난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9-11

[클래식TALK] 얼음공주의 콘서트

십수 년 전 예술의전당의 초청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지휘했다. 여름 방학 기간 어린 청중들과 부모를 대상으로 열린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독일어 가사 대신 한국어로 번역해 무대에 올렸다. 꽤 많은 횟수를 공연했는데 전 회가 매진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매 공연의 시작은 관객들을 환영하기 위해 파파게노가 무대에 등장했다. 작품의 주인공이 화려한 복장 차림으로 나타나 인사할 때 쏟아지던 어린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학 시절 알게 된 피아니스트 최 선배는 남다른 재능으로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지적인 연주를 펼치는 음악가로 평가받으며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최 선배로부터 두 아이를 양육하는 피아니스트 엄마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곡가와 작품을 들려줄 때 아이들의 반응이 흥미롭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선배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무서워하고 슬퍼한단다. 이 곡이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 임을 알 수 없을뿐더러, 독일어 가사를 이해하지도 못했을 터인데 아이들의 반응이 신비롭다. 반면 베토벤의 작품을 들려주면 열에 아홉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이건 좋고, 저건 싫고’가 분명하다는데, 생각해보니 캐릭터가 선명한 작곡가의 성향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는데, 바로 모차르트. 언제 어떤 곡을 연주해도 모차르트 작품은 항상 좋아하고, 엄마에게 더 연주해달라고 와서 말하기까지 한다는 것. 브람스나 베토벤보다 진입장벽도 낮고, 바흐보다는 덜 구조적이고 유연하게 들릴 수 있는 작곡가라서 아이들의 감성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번스타인이 1958년에 청소년 음악회 TV 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세계 대부분의 악단은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연령을 더 낮춰 부모를 동반한 Very Young People‘s Concert를 열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을 각 그룹으로 나눠서 소개하고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리즈 음악회다. 스위스의 대표 악단 중 하나인 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태교 음악회라고도 할 수 있는 임산부 음악회가 그것이다. 이 정도면 엄마를 위한 일반 음악회인지, 배 속의 아이를 위한 어린이 음악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가 목표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악단의 책임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은 연령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기회를 만드는 것으로 다음 세대들을 위한 기회를 창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힐러리 한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차갑고 이성적인 그의 성격과 연주 스타일 때문에 붙은 ’얼음공주‘라는 별명과는 달리 그는 종종 베이비 콘서트를 연다. 먼저 넓은 공간에 패드를 깔아 아이들이 마음 놓고 기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는 헤엄치는 아기들 앞에서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다. 음악과 상관없이 엄마와 꽁냥거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신기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꼿꼿하게 고개를 세우고 뚫어지라 바라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춰가며 연주한다. 이런 연주는 부모로서도 긍정적인 경험이 되고, 음악가로서도 배움이 된다는 힐러리의 말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음악교육이 왜 ’책임‘의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가리킨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음악회는 수혜자도 공급자도 상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좋은 장이다.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존재이다. 이들이 들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만큼 숭고한 배움이 또 있을까. 이 책임은 우리가 모두 나눠야 할 짐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8-28

[클래식TALK] 방 안의 코끼리

데이는 태국과 일본 그리고 과테말라를 거쳐 한국으로 온 아프리카계 미국 청년이다. 사람들은 그를 ‘흑인’이라고 말한다. 2년째 서울에 살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하며 건실하게 삶을 일궈가고 있다. 그는 같은 피부색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겪는 고충을 돕는 일도 한다. 영어학원의 강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동료들의 경험을 보면서, 피부색 때문에 언제까지 이런 불평등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2012년 2월, 플로리다의 샌포드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다. 캔디를 사던 평범한 17세 소년 트래본 마틴은 동네를 순찰하던 조지 짐머만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커다란 파문이 일었지만, 조지 짐머만은 선량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몰렸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그를 지원하는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최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BLM(Black Lives Matter)’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팝이나 재즈 분야에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독보적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계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최근 50년 사이에 아시아 출신 연주자들의 비약적인 도약과 수적 증가가 뚜렷해지면서 위상과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이 분야는 백인 순혈주의가 강한 편이다. 그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흑인 음악가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폴란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던은 줄리어드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비올라 연주자이다. 지난가을,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인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오디션에서 우승한 조던은, 영국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터티스 비올라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음악가로서 탄탄대로의 길이 열린 조던은 BLM 운동에 관해 ‘복잡한 사회문제’라고 말했다. 흑인들이 겪고 있는 부당함을 알아줘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을 뛰어넘는 사회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들이대는 냉혹한 잣대는, 자연스럽게 도전하고 시도하며 배워가도록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데 있다. 그래서 모든 리허설이나 연주는 물론, 평소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과 같은 외모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편안한 모습이 보이면 사람들의 불편한 바로 그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한 준비성이나 프로페셔널리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흑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엄연히 존재하는 이 문제를 방 안의 코끼리처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다. 흑인 연주자가 출연해 흑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도록 장을 열어 주는 식으로 이를 무마하려고 한다면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BLM 운동은 단순한 연대를 뛰어넘어, 그들과 인식을 같이하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언맨이 입었던 강철 옷을 입은 철면피가 되지 않더라도, 숨 쉬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조던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그들이 내딛는 먼 여정에 우리의 한 걸음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8-14

[클래식TALK] 축소와 취소, 그리고 온라인

1966년 ‘모차르트 페스티벌’로 첫발을 내디뎠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은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뉴요커들의 여름을 지켜왔다. 그러나 지난 3월 링컨센터의 모든 시즌을 취소한다는 발표와 더불어 페스티벌도 백지화되었다. 게다가 제인 모스가 링컨센터 예술감독직을 27년 만에 내려놓는다는 뉴스까지 전해졌다. 지장이자 덕장으로 알려진 제인 모스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루이 랑그리와 함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을 총지휘했던 인물이었다.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50마일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카토나에서 열리는 ‘카라무어 페스티벌’ 역시 뉴요커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뱅커 출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월터 로센과 명문 집안 출신 루시가 결혼과 함께 축구장 56개 크기의 부지를 매입해 각종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2차대전 중 전사하게 되자 이를 추모하기 위해 예술과 음악을 위한 장소로 이 부지를 사용하기로 하고, 1945년 첫 번째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 페스티벌의 출발점이 되었다. 올해 75주년을 맞은 카라무어는 예정되었던 57회의 음악회 대신, 소규모의 온라인 공연 12회와 잔디광장에서 3회 공연을 여는 것으로 축소 진행한다. 시카고에서 열리는 ‘라비니아 페스티벌’은 지난봄 올 시즌 음악회를 열지 않는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8주 동안 다섯 편의 오페라를 올릴 예정이었던 ‘산타페 오페라’ 역시 모든 공연과 젊은 성악가들을 소개하는 쇼케이스 일정까지 전면 취소했다. 시즌을 완전히 취소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대체 진행하는 곳도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아스펜 페스티벌’의 경우는 차세대 음악가들을 위한 아카데미의 운영에 CEO 앨런 플레처가 직접 나섰다. 그는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음악가들과 함께 꾸미는 세미나를 시리즈로 진행하고, 각 전공별로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도 화상으로 개최한다. 예정된 음악회 수도 대폭 줄여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공연을 연다. ‘탱글우드 페스티벌’의 경우도 비슷하다. 온라인 리사이틀 시리즈와 함께, 보스턴 심포니와 탱글우드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미공개 영상들을 공개하고 있다. 콜로라도 베일에서 열리는 ‘브라보 베일 페스티벌’은 지난 5월 시즌 전면 취소를 발표한 이후 두 달만인 7월 초 새로운 일정을 다시 내놓았다. 이동식 무대인 ‘뮤직박스’를 제작하여 베일 인근을 찾아가며 소규모의 음악회를 열고, 대편성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던 포드 극장에서는 저명한 연주자들이 꾸미는 실내악 공연이 진행된다.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댈러스 심포니 등과 같은 굵직한 연주 단체를 비롯 핀거스 주커만, 예핌 브론프만, 선우예권 등이 올여름 베일을 찾을 예정이었다. 유럽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이 태어난 잘츠부르크에서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여름 음악제의 모태와도 같은 이 페스티벌은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중에도 개최되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피해 가지 못했다. 예정되었던 200회의 공연을 90회로, 16개의 공연장 대신 8곳 만을 활용해 철저한 방역을 준수하며 모든 공연을 진행할 열 것이라고 페스티벌 측은 밝혔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7-31

[클래식TALK] 터널 속의 번스타인

링컨센터 뉴하우스 극장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사이에 놓인 건물이 하나 있다. 뉴욕 시티 발레, 메트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챔버뮤직 소사이어티 등을 포함하는 링컨센터 상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으로 불리는 이곳은, 말 그대로 공연예술 쪽으로 특성화된 곳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몇 달간 문이 닫혀있지만, 각종 서적과 악보, 음반과 영상자료, 무대 세트, 대본과 편지, 행정문서, 정기간행물, 포스터와 프로그램 등과 같은 공연 예술 관련 자료들이 모여있다. 건물 안에는 전시관과 갤러리, 카페 그리고 1940년대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브루노 발터의 이름을 딴 강당까지 갖춰져 있다. 브루노 발터와 더불어 뉴욕 필하모닉과 인연을 맺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가장 미국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피아니스트였고, 작곡가였으며, 교육가였다. 그리고 정통을 자랑하는 유럽 악단의 자존심을 뛰어넘은 첫 번째 미국 지휘자였다. 2년 전 도서관과 그래미 박물관이 손잡고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번스타인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과 그림 약 150여 점을 비롯한 개인 소장품, 공부했던 자료, 친필 악보, 연주복, 편지, 졸업장, 여행용 가방과 가구 그리고 대표 음반과 영상자료들까지 거장이 걸어갔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에 비견된 천재였다.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암기해 피아노로 연주했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커티스 음악원에서 프리츠 라이너의 문하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졸업과 함께 보스턴 심포니와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던 그는 브루노 발터에 의해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영입되었다. 작곡가로서의 번스타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작품이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였다면, 뉴욕 필하모닉과 CBS 방송이 함께 했던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로서의 그를 전국적인 스타로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에 특화된 최초의 음악회였고 이는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그의 명성은 유럽에까지 전해졌고 유수의 악단들과 수많은 명반을 쏟아냈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그를 회고하며 ‘콧대 높은 유럽의 악단으로부터 오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말했고,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전통을 향한 깊은 존경을 가지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사랑했던 천재’로 기억했다. 번스타인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철저한 유럽 중심이었던 클래식 음악계에, ‘미국’이라는 갈래를 만들어 낸 공로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78년 남미 여행 중에 걸린 전염병 때문에 꽤 오랫동안 치료에 매달려야 했다. 회복 후에도 그의 겉모습이 예전과 달라졌을 정도로 길고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투병 이후 오히려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번스타인은 지휘만큼이나 피아노 연주를 원했다. 다수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에도 뜻이 깊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은 전천후 음악가였던 그의 삶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오늘을 교차해 본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7-17

[클래식TALK] 게임 속에서 열린 콘서트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3월 초, 데보라보르다 뉴욕 필하모닉 CEO는 카네기홀 대표 겸 예술감독 클라이브 길린슨, 그리고 메트 오페라단의 피터 겔브 단장과 함께 긴급 미팅을 가졌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뉴욕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공연 예술 기관장들의 회동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이 회의에서 남아 있던 올 시즌 모든 공연을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예정된 음악회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던 각 단체는 이미 판매된 티켓 환불에 관련된 안내를 시작했다. 카네기홀 공연을 예정했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일정은 연기 혹은 취소되었고, 수십 년 만에 추진된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해외 투어와 뉴욕 필하모닉의 유럽 일정 역시 물거품이 되었다. 3월 중순, 뉴욕의 클래식 음악의 심장은 가을을 기약하며 이렇게 멈춰 섰다. 3개월이 지난 이달 초, 시즌 오프닝이 예정된 9월 중에는 공연이 재개될 수 없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이 발표에서 이들이 내건 희망 컴백 시기는 연말과 연초에 걸쳐있는데, 메트 오페라는 12월 31일, 카네기홀과 뉴욕 필하모닉은 내년 1월 6일이다. 메트 오페라는 단장 피터 겔브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인원이 동원돼야 하는 오페라 공연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원작을 뜯어고쳐 오페라를 소규모로 줄이지 않는 한, 메트 오페라 무대에서 공연을 감상하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팬데믹 이전 뉴욕 필하모닉이발표한 2020~2021 시즌 일정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정기 공연 데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지명되어 큰 화제를 모은 지휘자 김은선의 데뷔, 그리고 김택수 작곡가의 작품 ‘더부 산조’의 뉴욕 초연 등 한인 음악가들의 굵직한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모두 취소되었다.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무대 역시 내년 시즌 후반부가 시작되는 2021년 초를 목표로 잡고 있다. 뉴욕의 소식이 전해지자, 미전역에서 시즌 오픈을 연기하거나, 아예 1년간 연주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단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은 단체들은 온라인 공연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연주자들이 집에서 촬영한 연주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공유하거나, 예전 연주 영상을 선별해서 콘텐츠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온라인 공연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내용이 아니거나 짧은 길이의 클립 수준이라서 연주자들이나 단체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 BTS의 온라인 콘서트에 75만 명의 유료 관객이 몰렸다. 엄청난 사람이 모인 화제의 무대였지만 가수와 관객들의 직접적인 소통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공연이 마친 후 리더 RM은 만일 관객을 직접 느낄 수 없는 이런 방식이 우리가 맞이할 공연의 미래라고 한다면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공연 활동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비대면이 디폴트가 된 뉴노멀 시대를 타게 할 길을 찾아야 한다. 무대와 관객이 만나는 라이브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을 온라인 공연이 대체할 수 없듯이, 현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온라인만의 특별한 무엇을 찾아 차별화시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 속에서 콘서트를 열고 그 안에서 기업들의 광고가 팔려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넓혀 놓을 가상의 세계가 삶의 영역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까. 흥미 있는 온라인 콘텐츠의 개발이 공연계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기억하자.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6-26

[클래식TALK] 희망가

사회가 비대면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넷플릭스나 훌루 같은 온라인 콘텐츠 제공업체나 전자 상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극장이나 공연장 대신 컴퓨터나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온라인에 의존한 구매 성향 역시 더 높아지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을 통한 전자책 대여 비율 역시 증가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한 단체로부터 집에서 들을만한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아우를 수 있을 만한 곡이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고민이 시작됐다. ‘장르나 길이 불문’이라는 조건까지 붙다 보니 부담이 커졌다. 연주 시간만 몇 시간에 이르는 대작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좌절감을 맛보기 십상이니, 짧고, 친숙하고, 의미 있는 곡을 찾기로 했다. 결국 필자 자신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곡을 추천하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적합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로 시작되는 곡이 있다. 바로 ‘희망가’이다. 이 노래는 영화 ‘군함도’을 비롯해 최근 가요 경연 프로에서 불려 화제가 되었다. 이 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한 여학생이 보트 사고로 익사하는 비극에서 시작된다. 학생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교사가 제자를 추모하기 위해 새로 가사를 썼고, 이 노래가 오늘날 ‘희망가’로 전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곡의 내용은 제목과는 정반대로 암울하고 절망적이다. 마치, 지혜와 부의 상징인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모든 것은 헛되다”는 표현으로 축약했던 것과 맥이 닿는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많은 사람에 의해 불리며 사랑받았지만,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희망가는 성악가 홍혜란이 부른 노래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임용된 홍혜란은 지난 1월, ‘희망가’를 포함한 한국가곡 12곡을 묶어 음반으로 발매했다. 성악가의 노래는 깊은 호흡과 단단한 목소리, 그리고 진지한 느낌이 연상된다. 그런데 홍혜란은 이 곡에서 힘을 많이 빼고 불렀다. 2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가 예전부터 흥얼대듯 불러주셨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 곡은 국내외 주요 스트리밍 업체는 물론이고, 유튜브에서도 ‘희망가’, ‘홍혜란’으로 검색하면 감상이 가능하다. 유튜브에는 음반에 수록된 원곡과 더불어 앨범 출시 기념 음악회에서 피아노 반주에 함께했던 희망가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음반은 반주부를 먼저 녹음해 편집을 마친 후, 여기에 노래를 따로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음악회처럼 오케스트라와 가수가 함께 노래하는 것을 그대로 녹음하는 ‘원테이크’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헤드폰을 이용해 감상한다면 오케스트라의 여린 호흡으로 시작되는 첫 부분과 가수의 숨결과 떨림이 오롯이 느껴지는 마지막 부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테이크’로 진행된 녹음 현장의 거친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준비되었다면 눈을 감고, 이 곡에 마음을 잠시 기대 보자.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기, 이 노래가 작은 격려와 희망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6-12

[클래식 토크] 뉴 노멀 시대의 탈출구

지난 3월 23일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 개막전이 무관중 경기로 열렸다.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은 이 경기는 ESPN을 통해서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는데,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고, 곧 NC 다이노스의 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 프로야구 MLB의 구단을 보유한 곳은 아니지만, 마이너리그팀인 더럼 불스와 캐롤라이나 머드 캣츠가 있다. 게다가 이 지역은 공룡 화석이 발견된 매우 중요한 지역인데, NC 다이노스의 팀 명과 캐릭터가 공룡이라는 공통점도 있으니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인연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로이 쿠퍼 주지사 역시 NC 다이노스의 공식 팬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야구팬들은 의도치 않게 대한민국의 창원이라는 생소한 도시와 NC 다이노스라는 야구팀을 접하게 되었고, 삼성이 프로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정국 때문에 시작된 무관중 경기가 불러온 예상치 못한 결과이다. 스포츠 경기가 되었건, 발레나 오페라 공연이 되었건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존재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생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맞이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필자는 수년째 한국의 한 공연예술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몇 달 동안은 뉴욕에서 벌어지는 공연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공연 취소나 연주자의 죽음 등을 다룬 암울한 내용이었는데, 다음 달에 보내야 하는 내용도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내 코로나 19 피해 상황이 정점을 찍은 이후 이런저런 소식과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코로나 이전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일상을 뜻하는 ‘뉴노멀’의 모습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이 상황을 잘 버티고 견디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기대 보자는 의견도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백신과 치료제의 조속한 개발이다. 언제쯤 가능할 것이라는 몇 가지 설이 돌고 있긴 하지만, 결국 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어두운 견해도 있다. 이런 시점에 뭔가를 계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9개의 연주와 1개의 해외 일정이 취소되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8월에 유럽에서 오는 연주자와 서부에서 갖기로 한 음악회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입은 재정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9월이면 시작될 새로운 시즌을 생각하면 암울하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상황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함께 참여할 연주자들의 일정을 확보하려면 음악회 날짜와 장소를 확정해야 한다. 타 지역에서 방문하는 게스트들의 여행 동선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재로써는 무의미한 셈이다. 우리에게 찾아온 온라인 시대.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지금까지는 쌓아 두었던 예전 음악회를 꺼내 온라인에 풀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이제부터는 플랫폼의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포맷과 방식의 적극적인 고민이 요구된다. 워낙에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었던 공연예술이 온라인화되면서 직면하게 될 현실적인 부분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회라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훨씬 넓어진 대중과의 접촉면을 어떻게 극대화하며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잘 풀어나간다면,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탈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5-29

[클래식TALK] Z의 콤플렉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필자는 X세대에 속한다.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유행했고 공중전화에는 녹음된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던 시대이다. 워크맨이나 마이마이와 같은 신기기의 출현은 원하는 음악을 취사선택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에 따라 대중문화의 파급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움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북한의 김일성 시대가 막을 내리며 철옹성과 같았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참사를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의 과도기적 폐해를 돌아보게 되었던 시기도 이때이다. 시험 점수에 맞춰 최후의 순간에 전공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음악의 경우는 입시 수년 전부터 전공은 물론 진학할 학교의 윤곽까지 결정된다. 물론 동료 중에는 십수 년간 음대를 준비하다가 결국 영문학도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전공을 돌린 친구도 있다. 음악을 접한 경험이라고는 교회 고등부 성가대에서 노래한 것이 전부였던 지인은 입시 몇 달 전 교회 선배가 가르쳐 준 오페라 아리아 몇 곡 달달 외워 음대 성악과에 입성했고, 지금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스타 성악가가 되었다. 한 오케스트라 음악회에서 전반부에는 바이올린을 들고나와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여 클래식 음악 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도 있다. 이런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전공 특성상 최소 수년 전부터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므로, 예술중학교나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정식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예술고 입시를 도전했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현악기나 피아노 전공은 대개 취학 전이나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에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낙방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3년 후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예술고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3년 혹은 그 이상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온 이들과는 달리,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필자의 경우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한참 뒤처진 출발선에 선 후발 주자라는 자격지심이 느껴졌다. 지금은 독일의 한 교향악단 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충북 청주 출신 동기 한 명과 유별나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는 동료의식 때문이었다. 이 콤플렉스는 단순히 나보다 나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위축을 뛰어넘어, 출신 학교의 지명도나 지도교수의 영향력, 나아가 도전했던 콩쿠르의 횟수나 순위 같은 수많은 경력과 경험들,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포함한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대학 졸업 후 쏟아지는 수많은 비슷한 콤플렉스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지나 요즘 젊은 층은 Z세대로 불린다. 스마트기기와 SNS에 능숙하고, 인종이나 지역, 문화에 대한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들의 뚜렷한 개인주의적 성향은 사회가 결정해 놓은 유행이나 유명세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것을 추구하고 선택한다.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는 얇더라도 넓고 많은 것을 습득한다. 글로 읽는 것보다 영상에 익숙하고, 직접 만져보며 경험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를 둔다. X세대였던 필자는 자격지심을 태우고 콤플렉스와 싸우는 것이 화두였다. 대학이라는 시스템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평하게 제공했다. 코로나19 시대와 마주한 Z세대 젊은이들이 맞이한 위기는 어떠한가. 졸업이라는 관문으로 빠져나온 이들 앞에 모든 통로가 막혔다. 떠밀려 또 다른 출발선 앞에 던져진 희대미문의 시대적 콤플렉스를 이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5-15

[클래식TALK] 고전을 대하는 자세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평소에 미뤄뒀던 일들을 찾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독서인데, 책을 읽는 것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유학 시절 열흘 남짓 겨울방학 기간 책을 옆에 쌓아 두고 하나씩 읽어 내려갔던 추억이 있다. 3개월마다 몇 권이나 읽었는지를 헤아리며 나만의 뿌듯한 허세를 느끼기도 했다.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는 넷플릭스에서 영화 ‘기생충’의 수상과 관련해 접하게 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를 봤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와 같은 거물급 배우들의 등장하고, 자그마치 3시간 3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에 이를 정도로 무게가 느껴진다. 40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의 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의 전반부에는 수많은 이름이 시대를 넘나들며 등장한다. 누가 누구인지, 악역과 우리 편의 구별도 어렵다. 미국 근현대사에 대한 배경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파악하다 영화를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요즘 한국에서 주목을 받는 젊은 소설가 정세랑과 더불어 가장 많이 회자하고 있는 최은영 작가의 최근 단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었다. 이전의 화제작이었던 ‘쇼코의 미소’를 통해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이 책 역시 인물을 섬세하게 배려하며 묘사하는 작가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두 자매의 오해와 이해를 그린 이야기인 ‘지나가는 밤’, 그리고 레즈비언 커플의 만남과 이별을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갈등 속에 담백하게 그려낸 ‘그 여름’ 등을 포함한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냈다. 여러 단편 소설을 단숨에 읽다 보면 편마다 느꼈던 감정이입의 경계가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경이 받은 문자는 은지가 보낸 것인지, 수이의 것인지, 그리고 주희와 윤희 중 누가 언니고 동생이었는지…. 시대상을 반영하듯,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인터넷을 염두에 둬서 제작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웹 드라마나 웹 예능은 짧게는 2~3분, 길어도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블로그의 인기는 시들었다. 사람들은 글이 길면 덮어 놓고 읽지 않는 경향이 커졌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스콜세이지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를 받는 ‘아이리시맨’을 두고 길고 지루해서 못 보겠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는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클래식 음악 중에서는 기본 러닝타임이 최소 서너 시간에 달하는 오페라나, 말러나 브루크너의 작품들은 연주 시간이 1시간도 넘기도 한다. 나이 40이 되어서야 교향곡을 쓸 수 있었던 브람스는 4곡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하나같이 큰 사랑을 받는 걸작이다. 당대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이 작곡한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완전무결함은 어떠한가. 헨델의 ‘메시아’와 더불어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에는 성서가 바라보는 인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역작이다. 점점 쌓여만 가던 정보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가 종반 부를 향하는 어느 순간부터 가파른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엄청난 힘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건이 왜 지나갔으며, 어떤 인과 관계 때문이었는지, 또, 왜 이 영화는 길 수밖에 없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 먹먹하게 남아있는 특별한 그 무엇을 경험할 수 있다. 때로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긴 호흡의 고전을 대해야만 한다. 고전을 클래식이라 부르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번 주말,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로 인정받는 조지 거슈윈이 쓴 ‘랩소디 인 블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렇지만 알지 못했던 찰나의 연속들이 이 고전 속에 빛나게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5-01

[클래식TALK] 연대가 필요하다

코로나19가 미국 내에서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된 지난 3월 초,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공연 기관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5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던 올해 시즌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모든 고용인의 급여 지급도 3월을 끝으로 중단된다는 소식이 3월 19일 자 뉴욕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케네디센터를 홈으로 하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같은 이유로 연주자들의 생계가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프리랜서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거대 예술단체들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며 음악계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학교는 물론, 종교행사나 강연도 온라인으로 발길을 돌렸다. 화상 회의와 강의를 위한 관련 제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고, 음악가들 역시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형 연주단체들은 이전 연주 영상을 오픈하고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온라인 콘서트홀인 베를린 필하모닉과 메트 오페라는 한시적으로 모든 공연 콘텐츠들을 무료로 열었다. 특히 메트 오페라의 온라인 공연은 2007-08년 시즌에만 133만 달러의 티켓 이익을 거둔 바 있다. 최대 온라인 클래식 음악 매체 중 하나인 ‘바이올린 채널’은 ‘거실 라이브’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서 30분짜리 미니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비보 페스티벌(VIVO Festival)의 예술감독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우가 출연했고, 이튿날에는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이 페이스북 무대를 꾸몄다. 청중들은 실시간 피드백과 더불어, 연주자 소개에 안내된 벤모 어카운트로 직접 후원을 할 수 있다. 무대를 잃은 프리랜싱 음악가들을 지속해서 대중에 노출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끌어내도록 돕는 프로젝트로, 김시우의 연주 경우 공연 하루 만에 조회 수 8000을 기록했다. 또한 미국의 클래식 현대 음악 중흥을 위해 창립된 New Music USA는 음악가들을 직접 후원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취소된 음악회들 가운데 현대 음악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관련된 연주자들을 위한 긴급 펀드를 27만 달러를 모금했다. 현대음악 연주자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지원되는 이 펀드는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아 540명의 연주자에게 1인당 500달러씩 선착순으로 지급된다. 독일의 문화부 장관 모니카 그뤼터스는 “바로 지금, 예술가들이 꼭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며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1,560억 유로, 미화로 약 1,700억 달러에 달하는 문화 예술계를 돕기 위한 추가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프리랜서 음악가들을 위한 지원도 포함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진행되지 못한 행사와 프로젝트들에 대한 지원금에 대한 회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뤼터스 장관은 전염병의 파괴적인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이때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은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그 나라 예술가들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엘리베이터나 건물 입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점자는, 누구에게는 그냥 점 몇 개이겠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 홀로 설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길잡이다. 작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전염병이 돌고 사람들이 죽어가며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만 지옥이 아니다. 희망을 붙들고 막막한 상황을 이겨내는 모든 사람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4-03

[클래식TALK] #KeepPlaying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시시각각 늘어가는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금보다 나빠지면 얼마나 더 나빠지겠냐며 낙관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닥을 치기까지는 한참 더 내려가야 한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코로나19로 시작해서 끝나는 요즘이다.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신음과 비명이 들려온다.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상공인들의 이어지는 한숨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숨을 옥좨온다. 공연예술 종사자들은 그야말로 아무런 해법이 없다. 특히 뉴욕은 역량 있는 아티스트라면 프리랜싱으로 살아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은 프리랜서 예술가들이 돌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링컨센터나 카네기홀과 같은 하드웨어에 콘텐츠를 채워가는 일은 메트 오페라나 뉴욕 필하모닉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프리랜서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정기적으로 사례가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계약이 이뤄지는 형태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모임과 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요즘, 이들의 설 무대는 없다. 베를린을 베이스로 하는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베토벤 축제가 열리는 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 페스티벌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취소된 데 이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미츠코우치다와 함께 할 계획이었던 미국 투어 일정 역시 취소되었다. 오랜 기간을 준비하고 기대했던 악단의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은 돌아가며 집, 혹은 연습실에서 짧은 연주 영상을 찍어 매일 유튜브에 올리며 그들의 연주를 온라인에서 이어가는 운동을 하고 있다. 바로 ‘#KeepPlaying’ 캠페인이다. 지난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텅 비어있는 홀에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연주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고, 이에 수많은 사람이 반응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Nightly Met Opera Streams’를 발표해 매일 저녁마다 작품을 선별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시청하도록 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역시 ‘Digital Concert Hall’를 무료로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몇 년 전, 건축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반평생을 살아온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분의 유일한 취미가 악기 수집이었다. 집을 짓고, 부수고, 고치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버려진 악기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 웬만한 악기는 다 모았다고 했다. 그중에는 조금만 손보면 연주가 가능할 만한 것들도 있어서 몇몇 악기들을 틈틈이 배운다고 말했다. 버려진 악기를 어루만지고 소리를 이어간다는 그 어르신의 담담한 이야기가 울림으로 남아있다. 당장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조인도, 그리고 상대와 몸을 부딪치며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멈춰 섰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게 되는 오늘, 음악은 당신의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좋은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음악이 필요하다. 김동민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3-20

[클래식TALK] 니모와 코로나19

2013년 2월 미 북동부를 강타한 눈 태풍 ‘니모’를 기억하는가?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듯 북쪽으로는 캐나다, 동쪽으로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영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보스턴에는 25인치에 달하는 눈이 쏟아졌고, 이는 보스턴 역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수치였다. 로드아일랜드와 매사추세츠에 거주하는 60여만 명이 전기가 끊겼고, 인근 다섯 개 주를 포함하면 70만 명 이상 정전의 극심한 피해를 겪었다. 그 주말에는 뉴욕의 3개 공항에서 6000여 건의 비행편이 취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스턴, 하트포드 등의 주요 공항까지 폐쇄되었다. ‘니모’가 휩쓸었던 해당 지역의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우편서비스 역시 중단되었다. 많은 모임과 행사들은 줄지어 연기 혹은 취소가 되었다. 필자 역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바그너의 곡을 새롭게 편곡하였고, 줄리어드 출신의 작곡가에게 바이올린과 첼로 독주자를 위한 2중 협주곡을 위촉하여 초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명곡 ‘죽음과 소녀’를 구스타프 말러가 현악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작품도 연주를 기다렸다. 공교롭게 세 곡 모두 새롭게 작곡과 편곡을 위촉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고, 말러가 편곡한 슈베르트 역시 저작권에 묶여 있는 관계로 연주를 위해서는 출판사에 렌털비를 지불해야만 악보를 빌려올 수 있었다. 이 음악회에 출연하는 두 명의 솔리스트와는 일찍이 리허설을 마쳤고, 연주가 가까워지면서 오케스트라 전체 리허설도 시작되었다. 멤버 중에는 보스턴과 볼티모어에서, 그리고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온 연주자도 있었다. 리허설 첫날만 하더라도 날씨는 구름이 많이 낀 정도였는데, 그날 늦은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곧 엄청난 바람을 동반하더니 그칠 줄을 모르고 쏟아졌다. 이튿날,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눈바람은 감히 외출을 감행할 수준이 아닐 정도로 심해졌다. 목숨을 걸고 리허설 장소까지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멤버들 모두가 무사히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이렇게 음악회를 준비한들 관객들이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당시 인근 음대의 오페라 공연이 악천후로 취소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알아보니 이 기간 예정되었던 대부분의 공연과 행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필자 역시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기대를 가지고 준비했던 음악회였고, 특히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연주자들이 많이 모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연주를 강행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연주자들과 관객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했어야만 했다. 웹사이트에 음악회 취소 내용을 급히 올리고 e메일 리스트에 있던 분들께도 공지 메일을 보냈다. 이미 리허설까지 진행했고 유독 악보 관련한 비용도 많이 들어갔던 재정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쓰린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라는 혼돈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3일 뉴욕 내 확진자가 나왔다가 발표한 이후, 확진자 증가 추세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라고 알려졌다. CDC의 발표대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그 어떤 예방조치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는 모두의 고통을 수반한다. 특히 직접 소통이 필수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제는 보스턴에서 3월 중순 예정되었던 필자의 음악회를 잠정 연기한다는 주최 측의 연락을 받았다. 4월 초에 베를린에서 오는 바이올리니스트와 예정된 음악회는 어찌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이런 말 못 할 어려움이 어찌 공연예술 분야뿐이겠는가? 부디 이 어려운 시간이 잘 지나갈 수 있기를…. 김동민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3-06

[클래식TALK] 20 For 20

1936년 출범한 AM 라디오 방송 W2XR은 뉴욕시를 베이스로 하는 유일한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인 WQXR의 모태가 되었다. 1944년 W2XR이 뉴욕타임스에 매각된 이후 FM으로 주파수를 변경하였고, 97.7을 통해 64년 동안 방송을 이어왔다. 2009년 현재의 주파수인 105.9로 주파수 채널을 이동한 이후 뉴욕타임스는 뉴욕 퍼블릭 라디오에 매각하게 됨에 따라 WQXR은 비영리 라디오 방송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WQXR은 새롭게 출시되는 클래식 음반을 선정하고 음악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뉴욕과 인근 지역에서 열리는 공연을 중계하거나, 라이브 공연 실황을 녹음하여 방송하기도 한다.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은 주로 토요일 저녁 시간에 소개되고, 낮 시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공연 실황이 방송된다. 이밖에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음악회, 떠오르는 신진 연주자들의 연주,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음악이나 현대음악과 같은 비주류 음악들도 전파를 탄다. 라디오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나 전용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1월 초 WQXR은 ‘20 For 20’를 선정했다. 2020년을 맞이해 스무 명의 음악가와 단체를 지정해 1년간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방송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명단 가운데 네 명의 한국계 음악가 이름을 올렸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소개된 조성진은 2015년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이후, 권위 있는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쇼팽·모차르트·드뷔시의 작품을 담아 3장에 출시했다. 지난 7월 뉴욕 필하모닉은 상해 연주에서 조성진을 협연자로 세웠고, LA 필하모닉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그를 초청했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지휘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여성 지휘자 가운데 최근 큰 화제를 불러왔던 김은선도 명단에 올랐다. 남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은선은 최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지명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는 최초로 그를 수석 객원지휘자로 지명했고, LA 오페라,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등지에서 지휘봉을 잡으면서 북미에서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수필 ‘인연’의 작가로 잘 알려진 영문학자 피천득의 외손자인 뉴요커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 역시 20명에 선정되었다. 올해에는 독일 베를린 콘체르토하우스 오케스트라와의 첫 연주를 비롯한 영국·더블린·샌디에이고·밴쿠버·홍콩·서울 등지를 돌며 연주를 펼치게 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제레미덴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미국 작곡가 아이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시리즈를 연이어 무대에 올리게 된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바이올리니스인 에스더 유는 지난 2010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국제 콩쿠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BBC가 지정한 뉴 제네레이션 아티스트로 활동했고,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은 그를 최초의 상주 음악가로 초청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같은 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미국·일본·중국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서울시향과의 데뷔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오늘 딱딱한 뉴스를 간추려 소개한 이유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WQXR의 리스트가 아닌 이 지면을 통해 일반 대중의 흥미와 눈높이에 맞춘 내용과 형식으로 음악가를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필자가 독자들께 제공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대중이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공연이나 음반을 접할 때 내가 아는 연주자, 혹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아티스트를 접하게 되면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몰입도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20-01-24

[클래식TALK] 헨델이 놓은 순례길

11월 말 추수감사절 연휴가 지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드로 접어든다. 연말 특수를 기다리는 업종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이 기간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해 뉴욕을 찾는 이방인들도 몰려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수많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치는 뉴욕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브롱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은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5회의 공연을 연다. 이달 중순에 시작된 빌리 조엘의 공연 시리즈는 지금까지 100회가 넘게 열리고 있는데, 이는 최다 숫자로 기록되고 있다. 시각 장애를 딛고 불굴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역시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의 공연을 연다. 팝의 여제 머라이어 캐리와 저명한 CCM 가수 크리스 톰린 역시 이 곳에서 연말 공연을 펼친다. 뉴욕 팝스는 팝 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로 지금까지 300여 회에 달하는 공연을 열어왔다. 음악을 사랑하는 뉴요커들의 눈도장을 받아온 겨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12월 31일에 열리는 뉴욕 필하모닉의 송년음악회는 미국 뮤지컬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스티븐 손드하임의 곡들을 모아 무대에 올린다. 그는 퓰리처상을 비롯해 그래미상, 토니상,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입지적 인물이다. 같은 날 펼쳐지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송년 음악회는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가 등장한다. ‘라 보엠’ ‘토스카’ 그리고 ‘투란도트’의 명장면을 선보이는 무대로, 오페라 애호가라면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을 충동이 생길만한 공연이다. 유명 아티스트와 전문 공연단체들만 연말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년 중 가장 많은 ‘메시아’ 연주가 펼쳐지는 시기가 바로 12월. 올해도 어김없이 뉴욕 필하모닉, 뉴저지 심포니, 성 토마스 교회, 트리니티 교회 월 스트리트 등과 같은 메시아 공연으로 널리 알려진 단체의 연주 이외에, 로컬 공연장이나 교회들을 중심으로 메시아 공연이 올라간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는 예수의 일생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간 이 작품으로 인류가 남긴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소망 목록으로 합창단에서 “메시아 전곡 부르기”를 뒀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메시아는 총 53곡에 전곡 연주 시간만 2시간이 넘어가는 긴 작품이다. 많은 수의 합창곡을 익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성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각 곡마다 기본적인 얼개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만큼 자신이 부를 파트는 물론이고, 곡 전체를 익히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정확한 발성을 익히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걸어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물이 되었다. 다니던 직장까지 정리하면서까지 수십 일을 걷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작년 한 해에만 이 길을 걸은 사람은 약 33만 명에 달한다. 약 500마일에 달하는 길을 걸으며 자신을 오롯이 마주한다. 그리고 혼자인 줄 알았던 여정 속에 같은 길을 걸어가고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으며 인생을 배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메시아에 도전하는 사람들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만일 그렇다면 메시아는 헨델이 놓은 순례길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선사하는 기쁨과 공연 일에 맛보는 성취의 카타르시스도 큰 보상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순례길과도 같은 준비 기간 동안 절대자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조우한다. 합창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내년을 목표로 가까운 지역의 로컬 합창단이나 성당이나 교회 성가대의 문을 두드려 봄이 어떨까.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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